병원에서, 강단에서 의료발전과 후학양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 적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꿈을 향해 미국 치과대학에 진학하여 다시 학생으로 돌아가어려운 학업 과정을 마치고 새로운 인생의 출발점에 서 있는 김수미 동문의 체험 수기를 소개한다.
용기를 가져라
나는 1995년 조선대 치과대학을 졸업하고 치과 보존과를 수련한 후 개원의로, 교수로 대학병원 부속치과에서 쉬지 않고 진료를 해왔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며 전공의와 학생지도를 하고, 개인병원 원장 시절도 무난하게 보냈다고 자부한다. 하지만 같은 일을 반복하는 진료의 특성상, 동료 치과의사들과의 학술적 교
류나 발전에 대한 열망이 나를 가만두지 못해 틈나는 대로 해외학회 및 학술모임 학회 활동 등에 참여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서울과 광주에서 진료하며 치과의사가 할 수 있는 모든 직위를 두루 경험했다.
이러한 쉼 없는 과정 중 내가 항상 꿈꿔왔던 진료는 환자를 만족시키는 진료뿐 아니라 나 자신도 발전할 수 있는 진료였다. 한곳에 머물러 발전이 없다는 느낌이 들면 어떻게 하면 한 발짝 나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진료를 시작 한지 20년이 넘자 새로운 것에 대한 갈망은 미국에서의 학문적, 임상적 역량을 키우고 싶은 열망이 되어 2020년 1월 드디어 나는 미국의 University of Pennsylvania에서 international visiting scholar program으로 미국 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을 알아라
나는 호기심이 많고 남과 다른 것을 시도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다소 한국 모범생의 생활 태도와는 달리, 어른들이 무엇인가 하라고 해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경우 왜 해야 하는지를 먼저 물어보곤 했다. 시키는 대로 무조건 해야 하는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과는 다소 충돌하는 성격일 수 있다. 미국 문화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에 대해 묻는 것을 존중하고 이해시키는 능력이 중요하다.
중학교 3년 동안 학교 대표로 영어 이야기 대회에 나가고, 영어선생님의 칭찬은 가보지 못한 나라에 대한 호기심을 더욱 자극했고, 자연스럽게 한동안 나의 장래 희망은 외교관이었다. 영어로 접하는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공부가 아니었다. 남편(의과대학 20회, 현 센트럴윤길중안과)의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Duke 대학 연수 때 살았던 1년 남짓의 미국 생활은 미래에 내가 미국에 연수 가서도 재미있게 살 수 있을거라는 확신을 주었다. 그 시절 나는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함께 줌바댄스를 추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만약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쌓고 싶다면, 적어도 몇 개월이라도 살아보고 결정하라고 제안하고 싶다.
나의 여정
나는 한국을 떠나기 전 4년간 강남 성심병원에서 통합치의학 전문의 프로그램에 있는 레지던트를 지도했고, 올림픽 선수촌 치과 주치의로 진천 선수촌 선수들을 진료했다. 전공의를 지도하며 나의 치과 지식 전반에 대한 자기 점검을 하고 싶었고, 결국 미국 치과의사 면허 시험을 공부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병원 진료중에 1차, 2차 시험준비를 틈틈이 해야 했고, 미국에서 시험을 치러야 하기에 무리한 계획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수영, 스키 동호회 활동을 하며 스트레스를 줄이고 이 과정을 즐길 수 있었다.
미국 Upenn Endodontics에서 1년 반의 여정이 끝나는 시점인 2021년 4월, 나는 아쉬움을 느껴 미국 면허를 딸 수 있는 치대 진학을 고려하게 됐다. 미국에서 진짜 학생이 되고 싶은 꿈도 한몫했고 남편의 응원도 결정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앞서 치룬 미국 Board 시험, 어린 시절부터 즐겁게 했던 영어 공부 등이 마지막에 지원을 할 수 있는 힘이 됐다. 다행히도 2500명 지원에 30명을 뽑는 프로그램에 첫 번째 응시한 해에 합격했고, 어려운 미국 치대 과정을 무사히 마치고, 미국 치과의사 최종시험까지 합격하여 면허를 취득했다. 미국 치대는 준비과정부터 학교 커리큘럼까지 어렵고 참을성이 요구되는 과정이다. 일주일에 두세 번 다양한 방식으로 치러지는 시험 스트레스, 외국인이기에 겪는 문화적인 차이뿐 아니라 다양한 인종 및 사람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태도와 차별로 많은 스트레스를 겪었다. 그러나 이 과정을 통해 나는 문화의 이해와 수용, 그리고 오해나 부당한 상황에 놓였을 때 설득할 수 있는 의사소통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느꼈다.
앞으로의 계획
얼마 뒤 미국의 새로운 치과병원에서 진료를 시작한다. 낯선 곳에서 일하게 될 생각에 기대와 설렘을 느낀다. 분명 어제보다 나은 치과 의사가 되어 있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도우며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또한 뉴욕의 Columbia university 치대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에게 치과의사로서 서로 용기를 주며 진료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 끝으로 같은 의료인으로서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주는 남편 윤길중 원장에게 감사하고 싶다.